Unbearable Lightness

회의론자 혹은 회색분자의 변명

iTherapist 2020. 6. 29. 14:55



지식과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혼란이 가중되고 무언가가 정리되어가거나 어떤 것이 명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수집한 찌라시 정보가 많아질수록 확증편향은 짙어지고 나만의 왕국에서 만들어진 괴물같은 이종결합hybridization 만 더 커졌다. 그렇게 나도 내가 사기꾼들이라고 욕하던 이들을 닮아 갔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했던가?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움직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조절되는가, 특히 움직임 조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

확실한 근거와 논리를 찾고 구축하겠다는 오만함을 버리기로 했다. 불확실하고 주관적 생각이며 주장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지식 중 주관에서 시작되지 않은 지식이 있던가. 객관적이다고 주장하는 그 주장조차말이다. 그래서 알량하고 뜬구름 같은 나의 생각에 기대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거인들의 주장을 다시 곱씹어보기로 했다. 겨우 한줄 요약된 내용으로 그들의 통찰을 모두 이해한 것인것마냥 평가하고 반론을 가하고 나의 평을 덧대었던 오만함을 억누르기로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통찰이 얼마나 깊은지 글과 단어로 표현되지 못한 그들의 경험지식과, 원래 표현하려고 했던 개념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책을 3번 읽으라고 했던가. 책의 내용을 읽고, 그 다음 저자의 생각을 읽고, 나의 생각을 읽으라고 했던가. 책을 한 번만 읽었다. 두 번째 단계까지 간 적도 별로 없고, 세 번째 단계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호기심 발동 연구(curiosity-driven research)라고 하던가? 나의 고민과 내 머릿속에 짜여져 이제는 걷어내기도 힘든 정보들은, 사실,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진행했던 연구도 없었다. 주관성이 배제된 연구활동과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 돌아가야겠다. 정리와 이야기의 정립은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끝난 다음에 이루지는 것인데도 나는 그것을 거꾸로 하지 않았던가. 내 것도 아닌 지식을 정리해서 마치 나의 논(리)에 물 대듯이 끌어 쓰지 않았던가. 비판하기 전에 그들의 생각과 통찰을 고민하면서 다시 읽어야겠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읽고 실행해봐야겠다. 

낡았다고, 오래되었다는 이유가 버려야한다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쓸 데 없는 주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 최신 지식 또는 정보라고 하는 것들이 본질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겉포장지나 보다 복잡하게 논리를 꼬아서, 혹은 더 세부적인, 그리고 비싼 고급화된 장비로 본질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을 나는 많이 봤다.

배경background을 보지 못하고 전경foreground에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전경의 화려함과 명확성 그리고 가시성에 갇혀 배경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배경과 전경이 상호보완적이고 교환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서술과 기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누었던 것을 나는 그것이 본질인 것마냥 착각하고 거기에 갇혔던 것은 아닐까?

더 늦기전에 돌아가야겠다. 정리는 나중에 해야겠다. 내가 한 행위의 처음과 끝, 바닥과 천장, 폭을 더듬어 보고, 고치고, 다시 세워보고, 그런 후에야 요약하고 정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 더 늦기전에... 이렇게 살다가는 내 머릿속에 남의 생각으로 가득찬 채, 그것도 그것이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가게 생겼다.

나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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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닝의끝은순정 #움직임을위한움직임 #다시시작하는움직임 #나에게서시작되는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