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F 광주지회 블로그에서 퍼온 글> 1
응? 생일파티 참석하러 독일에 간다고?!
브리타 선생님 생일 파티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작년 독일에서였다. 당시 우리는 CLT 코스 참석 차 독일에 있을 때였다. 그때 이문규 과장님은 “내년에 브리타선생님이 생일 잔치에 우리를 초대할 거 같다. 나혼자라도 참석해야겠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올 해 초 브리타 선생님이 한국에 오셔서 다 같이 저녁을 먹은 날, 예상 치 않게 여러 사람이 브리타 생일 파티에 참석하러 독일에 가겠다고 나섰다. 나를 포함해서. ^^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린 “독일원정대”라고 이름을 붙였다.
“This is the start about the story of the fellowship to Germany.”
출발~
독일원정대가 꾸려진 날부터 출발하는 날을 기다렸다. 설레임이 반이고 기대가 반이었다. 출발하기 이틀 전, 마지막 사항을 점검하러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비행기편, 이동경로, 숙박 예약 상황을 점검했다. 두둥! 드디어 그날이 왔다. 여행 처음 가보는 놈처럼 들떠서 잠도 못자고 거의 날을 샜다. 새벽 6:03분 기차를 예약해 놓은 터라 반쯤 떠진 눈꺼풀로 겨우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첫 시작은 기차였다. 여행의 시작, 차보다는 왠지 기차가 더 어울리지 않은가! ^^
사전에 정보 수집을 한 결과 서울역에 있는 공항 터미널에서 출국 수속, 화물 위탁, 심지어 출국 심사까지 할 수 있다고 하여 우리는 모든 과정을 서울역에서 끝냈다. (놀라운 세상). “광주송정역-(KTX)-용산역-(지하철)-서울역-(공항철도)-인천공항역”으로 이어지는 번거로운 과정이 출발부터 이어졌지만, 서울공항터미널에서의 이른 수속 덕분에 예상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밥! 밥을 먹고 나서야 우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여행이 시작되었다. 면세점 여행. ㅠㅠ
비행기 타기 직전에 원정대 서울 합류팀(사실 혼자)인, 김선미 선생님을 비행기 탑승구에서 만났다. 세상에 과장님이랑 동갑이란다. 털썩! 최강 동안이시다. 처음 뵈었는데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따뜻하게 맞아주고 반가워 해주어 감사했다. 교수님과 과장님, 김선생님도 오랜만에 뵌 사이라는데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난 것처럼 웃고 떠들고 기념샷 찍고 즐거워 하셨다. 비행기 탑승도 우리팀이 가장 나중에 탔다. 탑승 마감한다는 안내 방송 듣고. ^^
BRITTA’S BIRTHDAY 1일차
영화보고, 졸고, 밥먹고, 졸고, 밥먹고, 영화보고 했더니 도착하더라. 우린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도착하였다. 끝이 아니기에 -아직도 3~4시간은 더 가야하는 – 우리는 ICE를 탈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 가서 기차표를 끊었다. 다시 만하임으로 가는 기차 여정 시작. 만하임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 30분쯤. 기차에 내리니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게 밝다.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독일은 9시 넘어야 깜깜해진단다.
브리타 선생님이 예약해놓은 택시를 찾았다. 쉽게 만날리 없지. 우여곡절 끝에 미리 받은 전화번호로 통화 후 만날 수 있었다. 그 독일 청년은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그 청년의 영어도 나만큼 짧아서 다행이었다. 독일 택시 기사들은 너무 마음에 들어. 막 짐까지 실어주고. ^^
드디어 도착! 여기가 브리타 선생님 집. 드디어 주인공 브리타를 만났다. 그녀는 우리를 보자마자 늘 그랬듯 소녀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와 특유의 반가움을 표시하는 몸짓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치고, 안아 주었다.
여러 나라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파티에 참석했다. 브리타는 이번 생일을 그렇게 치루고 싶다고 하셨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그 많은 사람의 숙소까지 다 챙기고. (할머니는 위대하다.) 우리가 묵을 곳은 선생님 동네의 게스트하우스. 작년 브리타 선생님 집을 방문 했을 때 우리 일행이 묵었던 곳이었다. 교수님은 방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놀라워 하셨다.
짐을 풀고 생파에 참석하러 갔다. 이제 공식적인 생파 행사가 시작된 거다. 총 3일간의 파티. 시작은 브리타선생님 집의 정원에서 열리는 리셉션. ^^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대형 천막을 설치해두셨네. 미니 옥토버 페스트 천막 같다. 브리타 선생님은 독일 전역 뿐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에게 우리 일행 한 명, 한 명을 소개했다. 환영도 받았고, 박수도, 맥주도, 와인도, 음식도 받았다.^^ 촛불이 켜진 작은 천막에서 따닥따닥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독일원정대의 첫 날 밤이 지났다.
[브리타쌤이 마려해준 남자들 게스트하우스]
BRITTA’S BIRTHDAY 2일차
산책
누가 제안할 것도 없이 다들 산책을 준비했다. 브리타선생님이 살고 있는 동네는 Wein Strasse라고 독일에서도 유명한 와인 트레킹 길이었다. 독일 사람들도 자전거나 차로 이 와인 스트라세로 여행을 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작은 시골 동네임에도 레스토랑과 와이너리, 숙박시설이 많았다.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Forst 산책에 나섰다. 상쾌했다. 작년에 와본 곳이지만 올 때마다 좋다. 너무 상쾌하고 고즈넉 했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포도밭 일을 위해 나서는 농부들, 그들과 나누는 인사, ‘궅은 모르겐’, 이슬을 머금고 있는 풀과 작은 포도송이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우리의 제트렉은 그렇게 사라졌다.
남자 사람들, 교수님과 과장님 그리고 나는 동네를 더 돌기로 했다. 작은 시골길도 예쁘고 집집마다 제각기 꾸며놓은 화단과 창가에 놓아든 꽃과 식물들 보는 재미로 아침 시간을 다 보냈다. 브리타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사진에서 보았던 Forst 마을 표지석에서 찰칵. Forst 마을을 관통하는 메인도로에서 교수님 찰칵. 우비입은 철이의 단독샷 찰칵.
뜻밖의 드라이브
그렇게 마을 산책을 하고 들어 오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을 만났다. 과장님은 작년에 여기에 묵었기 때문에 알아보는 듯 했다. 아저씨는 당신이 정비하고 관리하는 빈티지 카를 보여주셨다. 1940년생이라나 뭐라나. 2대를 보여주셨다. 차고를 보고 교수님은 부럽다는 말을 연발하셨다. ‘그래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인데…’라는 말을 여러번 하셨다. 빨간색 비틀. 구형이지만 너무 예뻤다. 처음 생산되었을 때부터 빈티지의 느낌을 가지고 나왔을 법한 차. 당신이 직접 고친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타고 다닌다고 했다. ‘원하면 태워줄까?’ 그 순간 우리는 한 열번 정도 YES를 반복했던 것 같다. 빨간색 빈티지카를 타고 달리는 유럽의 돌길. 유럽 자동차 광고의 장면 같았다. 당연히 승차감은 엉망이지만 그 불편함 마져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장정 4명이 작은 비틀을 타고 독일 시골을 달렸다. 그렇게 동네를 돌고 브리타 집 앞을 지날 때 브리타가 집 밖으로 나왔다. 우연한 조우. 브리타도 놀라워하며 즐거워 했다.
교수님은 빈티지카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교수님과도 참 잘 어울리는 올드 비틀이다. 둘 다 올드여서 그런가. (헉! =3=3)
축하 예배
둘 째 날 공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마을에 있는 작은 카톨릭 교회에서 열리는 축하 예배. 전 날 과장님이 브리타 선생님에게 예배 시 드레스코드를 물었는데 케쥬얼하게 입어도 된다고 했단다. 그래서 우리는 캐쥬얼한 복장으로 예배에 참석하였다. 예배는 카톨록 예배답게 매우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앉고 일어서고 무릎 꿇고. ㅠㅠ 한국, 미국, 아프리카,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에서 온 각 대표들이 축하사를 발표했다. 한국 대표는 크라운 프린스 이문규 과장님이 했다. 한국말로 먼저 말하고 그다음 영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브리타 팬들을 대표하여, 브리타의 생일을 맞이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고 이 영광스러운 장소에서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우리는 브리타라고 불리우는 고귀한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브리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브리타와 우리는 우리 분야에서 많은 훌륭한 일들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작업들과 우리 자신들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브리타를 향한 당신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리타, 그녀 자신을 빼놓을수가 없군요. 고마워요, 브리타. 당신 덕분에 당신 주변의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한국의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더 활기차게 변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브리타와 함께 한 뒤로 자신의 삶의 계획과 신념을 바꾸기도 했죠. 바로 저처럼요. 고맙습니다. 브리타! 고마워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주셔서. 한국을, 광주 마피아를, 저를 선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와인피크닉
둘 째 날, 두 번 째 행사. 피크닉!! 예배를 끝나고 나오자 트랙터가 연결된 마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독일식 빵과 소시지들이 도착하고 와인들이 각 마차로 배달되었다. 트랙터 마차는 그 꼬불꼬불한 와인용 포도밭 길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날씨는 완벽했다. 여러 포도 밭을 돌면서 그곳에서 생산된 와인을 마셨다. 와이너리 사장님이 직접 마차에 올라타 와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와인, 파란 하늘, 흰구름, 가족, 친구,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때 불었던 바람의 향기와 느낌을 잊을수가 없다. 와인에 취했다기 보다는 분위기에 취했다. 다들 행복해 했고 와인 포도밭 투어가 멋진 아이디어라며 브리타를 칭찬했다.
트랙터 마차는 다시 출발지였던 교회 앞으로 향했다. 출발했던 그곳에 우리는 다시 내렸다. 브리타 선생님은 가족, 친구들에게 다음 일정을 말해주었다. 다음 행사는 저녁 만찬. 옆 동네인 다이데스하임의 호텔 식당에서 열리는 저녁 만찬이었다. 우린 오후 5:00시에 그 호텔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 졌다. 이른 바, 자유 시간.
휴식, 다이데스하임
우리 고져러스 코리안들은 특별히 준비한 파티복장을 준비해서 다이데스하임에 먼저 가기로 했다. 여길 여러번 와본 이문규 과장님이 다이데스하임이 예쁜 동네라며 먼저 가서 구경을 좀 하자고 권했기 때문이다. 걸어서 20~30분 걸리는 거리여서 그냥 걷기로 했다. 간혹 비가 내렸지만 우린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일단 우리는 다이데스하임 중앙에 있는 다이데스하어머 호텔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카푸치노 한잔과 치즈케익. 우스게 소리에 ‘ㅋㅋㅋ’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시간은 물론 관광지를 보러 온 것이 아니어서 우린 마음마져 여유로웠다. 이런 시간에 느낀 감정과 생각, 풍경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교수님과 과장님은 저녁 만찬 자리에서 교수님의 발표와 멘트를 짜느라 머리에 열을 내시고, 우리는 옆에서 사진 찍기 놀이에 열을 내고. (죄송).
저녁 만찬
5시에 도착하니 다들 격식 있는 옷을 입고 도착해 있었다. 짜잔! 우리의 한복. 한쿡 여자 선생님들이 준비하신 아름다운 파티복. 한복! 역시 한복이 최고입니다. 예상했다시피 모든 손님들이 한복 차림의 세 여인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공이 브리타 선생님이 아니라 세 여인이 된 듯 했다. 사진을 찍고 감탄하고 또 사진 찍고. 한국보다 외쿡에서 인기가 더 많은 한복. 사실 한복은 브리타 선생님이 특별히 부탁하신 거다. 브리타 당신이 입고 있는 옷도 그 지역 전통 의상이란다. 한복처럼 특별한 날에만 입는 전통 의상. 옥토버페스트 사진에서나 봤음직한 의상.
와인으로 스탠딩 웰컴 리셉션을 하고 드디어 저녁 만찬장. 참 독일스서운 큰 호텔 홀을 예약하신 거 같았다. 화려한 장식이 없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꼼꼼한 디테일과 딱 필요한 것들만 갖추어 놓아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와 분위기.
저녁 만찬 중에도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하이라이트는 친구들의 감동적인 연설들. 각 나라 대표들이 브리타와 그녀의 가족들과 관련된 추억, 축복, 인연을 이야기 했다. 김태윤 교수님은 브리타가 한국에 왔을 때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으로 감동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13년 간의 추억. 교수님은 브리타 선생님과의 인연과 그 고마움을 이야기하고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감동적이었다. 동영상에는 10여 년 전 브리타의 모습과 교수님, 과장님, 그리고 광주 마피아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담겨 있었다. 모든 사람이 조용히 동영상을 지켜보았고 모두 감동했다.
특히 브리타 선생님의 부군인 크루트 할아버지는 교수님께 다가와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다. 브리타를 잘 지켜주고 보살펴 주어 고맙다는 말이었다. 쿠루트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신다. 그럼에도 그 진정성과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어르신들의 마음과 품격, 진정성이 마음까지 느껴져 그 모습 마져도 감동적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직후, 한쿡 사람들이 준비한 그리고 미쳐 참석치 못한 한국 친구들이 전해달라고 했던 선물 꾸러미들을 브리타에게 전달했다. 브리타보다는 가족과 친구들이 더 궁금해하고 부러워 했다.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 남이 받은 선물 궁금해하는 것은. ^^
급 마무리
우리는 광주 PNF 마피아이다. 브리타 선생님을 만나고 누구는 삶의 계획을 바꾸었다. 어떤 사람은 그분의 삶의 철학을 닮고 싶어라 했다. 그녀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열정과 영감을 전해주었다. 그 사소한 만남을 통해 우린 많은 것을 시도하고 바꾸어 나간다. 브리타의 책 제목처럼 혁명innovation이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많은 일들을 했다. 단지 생일 파티에 참석하려 선뜻 비행기표를 끊는 무모한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제자들이다. 독일원정대는 그 감사함에 대한 답이었다. 브리타 할머니 아니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우리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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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브리타 선생님 생일 파티에 참석하러 독일에 함께 다녀온, 김진철 선생님이 PNF 광주지회 블로그에 작성한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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