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한층 더 어두워진 뒷집 멋쟁이 할아버지의 텔레비젼 소리, 지붕에서 들리는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정체 모를 동물의 발자국 소리,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에어워셔의 미세한 기계음,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바늘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걸 보니 이제 그 문제들은 또 의식을 떠나 밑으로 숨었나 보다.
잠을 깨 놓고 지는 가버렸다. 왜 깨웠지?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새근새근 잘도 자는 놈이 보기 싫어서 심술을 한번 부려 본 건가? 초인종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아기 바구니가 놓여 있다. 아기가 우는 소리는 들리는 듯한데 아기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데...
왜 꼭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고민은 잠자다가 깨서 하는 걸까? 의식 아래에서 해법을 찾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의식이 무의식에 떠넘긴 의사결정을 무의식이 다시 반려시킨 것일까? 을(무의식)에 대한 갑(의식)의 갑질인지도...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무의식이 슈퍼 갑인지도... 숨은 몸통처럼 말이다. 어쨌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딴 곳 바라보기' 내지는 '이것도 언능 지나가리라' 따위의 수동적 우연주의 해결책은 먹히지 않는 문제인가 보다.
고뇌 총량의 법칙. 살면서 숙고해야 할 기간별 고민의 양은 일정하다. 평온할 때가 있던 것이 아니었다. 평온한 것이 아니라 애써 무의식에 떠넘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위임했을 것이다. 합의 하에 이루어진 위임이기보다는 일방적인 떠넘기기 혹은 암묵적 갑질이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렇다. 세상 모르게 자는 의식을 깨워 고통을 주는 것을 보니 '을의 반란'이거나 숨은 실세의 사주인 것이 분명하다. 잠 안재우기는 고문의 일종이니 말이다.
대게 아랫사람이 선의의 피해자이다. 말이 좋아 생각 내려놓기이지 사실 그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전가된 것이 분명하다. 그 고뇌는 오롯이 내 얼굴에 난 종기이다. 외면해도 떠넘겨도 어차피 내 추한 몰골인 것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욱 분명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더 뚜렷한 증거를 남긴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이미 이뤄진 결정에 의한 상처뿐이다. 결정되지 않은 문제는 고스란히 내 얼굴에 남아 있다.
어차피 내 얼굴에 난 종기이다.
내가 짜야 할.
(2015.2.17. facebook note에 적은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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