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많이 망설였지만, 그냥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으로 덮인 아침보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가자 타이어가 퉁퉁거렸다.
'어제 바람을 너무 빵빵하게 넣었나!'
남광주역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차도로 내려서며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전거에 한 다리를 걸치고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색을 기다리며 신호등을 노려보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아! 그 자전거였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애써 태연한 척 그리고 쿨한 척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가 내 말을 따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찍 출근하시네요?"
"네"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오늘 그 멋진 가죽 캡모자를 쓰고 라이딩용 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날처럼 슈트 차림은 아니었지만 얌전하고 세심한 린넨 자켓을 입고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자켓의 색은 진한 네이비였다.
"자전거가 진짜 잘 어울려요."
그와 속도를 맞추어 나란히 달리며 내가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자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 좋네요."
"얼마나 되셨어요?"
"올 초부터 탔습니다. 차도 타고 걸어도 보고 했는데 자전거가 제일 좋더라고요."
"클래식 자전거가 참 잘 어울리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선생님 자전거도 참 멋지네요."
"저도 올 초부터 자전거를 탔습니다. 정말 좋으네요. 이 길, 푸른 숲 길 정말 좋지 않아요? 감사하게도 전 이 길을 쭉 따라서 출근한답니다."
"네 정말 좋아요. 나무들이 그늘 터널을 만들어 주는 게 정말 좋습니다. 시원하고... 어디까지 가세요?"
그가 내게 물은 첫번째 질문이었다.
의례하는 말이겠지만 대화를 나누는 거 같아서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아! 저는 송암공단까지 갑니다."
"우와 꽤 멀리 가시네요."
"아뇨 적당합니다. 선생님은 어디까지 가세요?"
"전 S고등학교까지 갑니다."
순간 나는 내 예상이 많이 빗나가지 않았음에 뿌듯해했다.
난 사실 그가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빠져나가는 골목이 G병원 쪽이었던 것이 물리적 단서였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그에 관해 썼던 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것으로 보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일 것이다.
전통과 형식, 규제를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항하고 벗어나려고하기 보다는 그것을 존중하고 즐기는 마음이 깊은 사람일 것이다.
본인은 겸손한 척하며 숨기려 하지만 그가 가진 내공과 인자함이 새 나올 것만 같은 사람일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삶의 형식을 감추려 하거나 부끄러워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http://itherapist.tistory.com/158)
"아! 학교에서 근무하시는군요?"
그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싱글기어인가 보네요"
어색함을 빨리 지우려고 내가 뜬금없이 건넨 말이었다.
"아뇨! 3단기어입니다. 내장기어예요. 출퇴근 길에 오르막이 좀 있어서 이걸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상냥하게 설명했다.
"이 클래식 자전거를 고른 이유는 바로 체인가드 때문입니다."
유광 검은색 체인 가드 쪽으로 눈길을 옮기면서 그가 말했다.
"양복 같은 옷을 많이 입고 출근해야 하는데 더럽혀질 거 같아서요. 그래서 이 자전거로 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내가 의미 없는 맞장구를 쳤다.
"오늘 아침에 회의가 있어서... 시간이 다 되었네요. 저 먼저 가겠습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빼서 힐끗 보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예, 먼저 가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그는 페달질을 조금 빨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여서 따라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도를 낮추었다.
그가 낸 속도가 무색하지 않도록 기다려준 다음 그가 골목길로 사라지자 난 속도를 냈다.
(*관련글: http://itherapist.tistory.com/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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