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bearable Lightness

출근길 스토킹

iTherapist 2014. 6. 11. 13:49


"선생님, 자전거가 참 예쁩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를 우연히 본 건 엊그제, 그러니까 2일 전이다.

오늘 자전거로 출근하면서 또 만났으니 연속 이틀을 만남 셈이다.

나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그의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어 뒤따라가며 즐기려(?) 했는데, 본의 아니게 내가 그를 앞질러 버렸다.

다시 뒤따라 가고 싶어서, 가방에서 뭘 빼는 척한다든지, 아니면 주머니에서 뭘 찾는 척한다든지 이렇다 할 명분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찰나 그가 내 옆을 지나갔다.


"띵(벨소리)"

"죄송합니다"

그는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진짜 그렇게 느껴졌다) 벨을 울리며 죄송하다고 작게 말하면서 내 왼편을 지나 나를 추월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벨 소리와 더불어 그의 추월 동작에서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인가가 느껴졌다.


"선생님, 자전거가 참 예쁩니다."

기회를 잃을까 바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약간 돌려 그가 부드럽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꼿꼿한 자세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앞으로 가고 있었다.


약 2분 정도 그의 자전거를 뒤따라 가며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전거가 참 멋있었다.

아니 자전거를 타는 그의 모습이 멋있었다.


어제와 오늘 내가 본 그의 모습은 이런 분위기(아래 사진)였다.

오늘 그는 옅은 브라운색 바탕에 체크무늬가 들어간 정장을 입고 있었고 브라운색 로퍼를 신고 있었다.

그가 탄 자전거만큼이나 그도 클래식하게 보였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그의 자전거를 검색해보았다.

클래식 자전거라고 검색하고 그의 자전거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찾았다. 

검은색 클래식 자전거에 체인 커버가 있으며 스탠드가 달리고 리어캐리어를 가진 모습이 내 머릿 속에 각인된 그의 자전거와 유사했다.


이미지 출처: 삐삐베쓰 (pipi1368)님의 블로그


"안녕히 가세요."

그가 고개를 15도 정도 돌리며 말하고는 옆 골목으로 부드럽게 커브를 돌면서 사라졌다.

나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의 모습을 볼 겨를도 없이, 혹시 그가 못들을 까봐 평소 목소리 톤보다 2단계 높여 소리쳤다.


그의 자전거는 검은색 클래식 자전거였다.

브라운 브룩스 안장을 달았고 보기에도 부드러운 가죽 가방을 리어캐리어에 달고 있었다.

가죽 브리프 케이스는 얇기도 했지만, 내용물은 자체 폭보다 더 적게 들어 있는 듯했다.

아주 가볍게 보였다.

가볍고 얇은 그의 가죽 브리프 케이스 때문에 그의 모습이 더 경쾌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왼편에 가방을 두고 리어캐리어를 가죽 가방 끈으로 감아 고정한 모습은 그가 자유롭고 쿨한 성격이며 형식과 규제에 자유로운 사람이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는 캡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 또한 가죽이었는데 광택이 나고 표면에는 잔주름이 있는 모자였다.

모자 자체의 형태를 유지하기보다는 그의 머리 형태에 따라 자리 잡고 주름진 것을 보아 매우 부드러운 가죽으로 된 것으로 보였다.

분명 그가 아주 아끼는 물건이리라.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내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 지 석 달이 되었다.

항상 같은 도로를 지나는데 그를 본 것은 엊그제가 처음이었다.

자전거로 출근을 하다보니 자전거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마주치면 얼른 비켜주어야 할 것 같은, 져지를 입은 MTB맨이나 로드맨들이 무섭고 빠르게 지나가긴 했으나 그처럼 여유있게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제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신사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개를 잠깐 돌릴 때 본 모습은 40대 초중반의 신사였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것으로 보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일 것이다.

전통과 형식, 규제를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항하고 벗어나려고하기 보다는 그것을 존중하고 즐기는 마음이 깊은 사람일 것이다.

본인은 겸손한 척하며 숨기려 하지만 그가 가진 내공과 인자함이 새 나올 것만 같은 사람일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삶의 형식을 감추려 하거나 부끄러워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자전거로 출근한다는 동질감에 괜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으며,

실례이겠지만 잠깐 세워 각자의 자전거를 잡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며,

정중하게 부탁하여 그가 일하는 곳 혹은 그의 목적지의 분위기를 살펴보고 싶었다.


내일 아침 또 그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