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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13:33 - MK@ iTherapist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금남로 구도청 뒷편에서...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기차 출발 시간이 남아 잠깐 들린 서점에서 함께 갔던 치가 뜬금없이 책 한 권을 앵겨주었다.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야! 나 소설 안읽으니 사줄라면 내가 읽고 싶은 다른 책으로 사줘.


말을 목구멍 아래로 다시 집어 넣었다. 


요새 무슨 상 받았다고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한강 씨 책이잖아. 그냥 읽어 보자.


책을 앵겨준 그 치는 소위 요즘 뜨고 있는 채식주의자를 집어 들었다. 

기차에 올라 타고 난 그 책을 들었다. 가벼웠다. 왼손으로 책 한쪽을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다른 쪽을 움켜지고는 책을 구부렸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대고 책장을 후루룩 넘겼다. 215쪽. 


흐음, 그래. 뭐 이정도면 금방 읽겠군. 얼른 읽어 버리자.


책을 다시 내려 놓고 원래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 ...



이렇게 아픈 소설은 처음이다.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파는 책은 처음이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선가 이런 말을 듣고 난 뒤인듯 하다. 


아픈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비오는 날 같이 어두운 날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은 맑은 날처럼 밝은 분위기가 불편해. 왜냐면 자신을 감추기가 부담스러운거지. 그런데 흐린 날은 일부러 감출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더 편안한거지.


이 소설, 소년이 온다,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계속 읽기가 힘들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그러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불편했다. 애써 억눌러 놓았던 감추어진 것을 들추는 듯한 그 어색함과 억누르는 감정의 실패에 따른 분노. 그것이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그 불편함이 극에 달했다. 몇 주 전, 딸 아이와 분수대 주변에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장 높은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나면 바람에 작은 물 파편들이 날린다. 그 주변에 있으면 마치 비를 맞는 것처럼 옷이 젖는다. 딸 아이는 차가운 물방울이 몸에 닿을 때 느껴지는 이질적인 섬뜻함을 즐기며 놀았다. 우리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흩날리는 물방울을 쫓아다니며 맞고 즐거워 했다.


잊고 있었다. 아니 기억을 억누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80년 5월. 같은 공간.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 일어났던 곳. 금남로, 분수대, 도청은 그저 상징이었다. 살육은 광주 전 지역에서 일어 났다. 뭔가를 끝낼 작정은 한 그들이 선택한 곳이었다. 그들은 그저 그곳에 갇혀 있었다. 


그래 그 공간이다. 그곳이 이곳이다. 그래 소년이 죽은 곳이 이곳이구나. 소년이 지킨 곳이 이곳이구나. 소년이 지키던 수많은 시신과 관이 있던 곳이 여기였구나.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중에서...


어제는 흰색 도청 건물이 보이는 ACC(아시아 문화 전당) 뒷편 광장에 앉아 남은 책 뒷부분을 읽었다. 난 이 책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5.18 관련 단체들이 왜 그토록 저렇게 흉물스러운 건물을 남겨두기 위해 투쟁하고 싸웠는지를 감히 이해했다. 누구보다 더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더 잊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더. 그날의 그 흔적이 사라지면 그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초라한 흰색 건물을 보며 읽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소년의 어머니 심정은 소설의 클라이막스이자 위로였다. 거칠지만 어머니의 손은 따스하다. 작가는 소년의 어머니의 손 을  이용하여 광주의 그날을 감싸주려고 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막 포장된 아스팔트에서 몸을 데워 그날의 영혼들, 소년과 소년의 친구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를 궁금해하던, 작고 얇고 가벼운 영혼들을 달랜다.


책을 읽었던 그 광장 주변에는 소년의 작은형이 근무하는 학원도 보인다. 작은 형이 근무하는 학원에서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면 이 곳이 보일 것이다. 그 초라한 흰색 건물의 뒷모습. 형은 창문을 볼 때마다 소년과 어머니를 떠올리겠지. 잊고 싶을 것이다. 아니 여길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잊을까봐...


소년의 어머니는 그날 이후, 작은 형과 큰 형이 멱살을 잡고 싸우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으어어어 ...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그 고통과 한을 가지고 겨우 살아가고, 


당신들이 무슨 권한으로 나의 기억을 복원하라는 거야?


라는 말을 집어 삼키는 사람들이 사는 곳, 여기는 그들의 고통이자 영혼이다.



... ...


이제 이곳 ACC 광장은 젊은이들의 것이 되었다. 그날 소년이 살아남았다면 소년의 자식뻘인 젊은이들이 이 광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잊을 때가 되었나? 이 시대를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치고, 소년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난 달 읽은, 김훈의 책에 실린 518 생존자의 말이 떠오른다. 김훈은 자전거 여행을 하며, 망월동에 가서 묘지를 둘러 보았다. 그 묘지 입구에서 꽃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그날의 생존자를 인터뷰하였다. 그 사람은 ‘용서와 화해’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했다. 아무도 용서를 빌지 않았고 아무도 화해를 청하지 않았다면서.


우린 그들에게 잊으라고, 지난 날이니 이제 그만 잊고 웃자고 말 할 수 없다. 난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그런 말은 그분들의 영혼을 다시 군홧발로 뭉게는 것과 같은 고통과 다름아님을 깨닳았다.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없었다.


[자전거 여행2] (김훈, 문학동네) 중에서...


ACC 광장은 우리 가족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아내와 나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이 공간을 고맙게 여긴다. ACC라는 조경이 멋진 디자인이 멋진 곳이 생겨서 고마워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이곳을 다른 의미로 고마운 공간으로 생각해야겠다. 아들과 딸에게도 그 의미를 이야기 하겠다.  왜 이곳이 특별한 지, 왜 이곳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인가를...


작가 한강에게 감사하다. 그녀는 그녀 나름의 숙명적 숙제이기에, 작가 스스로 에필로그에서 말했듯이, 의도치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썼다고 말했지만, 소년은 나에게 갚을 수 없는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커다란 것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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