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bearable Lightness

우리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이대로 괜찮은 건가?

iTherapist 2013. 11. 19. 17:32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지난주에는 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오전에는 앉아서 발표를 들었고 오후 세션 발표에서는 좌장으로 무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젊고(저보다) 패기 넘치는 선생님들의 발표가 이어졌고 많은 학생과 임상 선생님들이 이해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 돌아갈래!"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은 바로 학술대회에서 배포되는 유인물 때문입니다. 요사이 직장, 학회, 사회 어느 집단이든지 간에 프레젠테이션에 관한 관심이 치솟고 있습니다. 관련된 강좌나 세미나가 많아 지고 관련 있는 책과 인터넷상의 글들이 많이 첨부되고 읽히고 있습니다. 누구나 발표를 잘하고 싶으니까요.

프레젠테이션 스타일과 방법은 집단, 장소, 때마다 다릅니다. 발표의 보조 자료인 슬라이드를 만드는 기술이 관심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각적 정보는 발표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이해와 설득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람과 관심은 학술적 토론을 하는 학회를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다녀온 학회를 포함해서 많은 학회에서 대형 화면에 걸리는 슬라이드들은 점점 세련되고 간결해졌습니다. 어쩔 땐 전문가의 뺨을 후려갈길 정도로 멋진 슬라이드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슬라이드는 세련되고 심플해지고 있는데 정보의 전달은 예전만 못한 거 같습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당연히 학술적 논의나 토론도 예전만 못합니다.

시각적 정보가 중요하고 청중들의 이해를 돕는데 사진과 영상이 훨씬 효과적이다는 데에는 이견이 붙을 공간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슬라이드의 넓은 공간은 사진이나 그림, 핵심 단어나 구절, 동영상이 차지하는 것이 맞습니다. 특히 내가 속한 분야처럼 움직임과 행동의 변화를 중요한 결과로 생각하는 재활분야에서는 사진과 동영상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왜 정보 전달은 예전만 못할까요?



차라리... 그냥 예전처럼 슬라이드를 글로 써서 만들자.


학술대회 자료집 즉 유인물은 그 학회나 집단의 최근 트렌드나 주요 이슈들을 담고 있는 중요한 정보원입니다. 그 자료집은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발표를 직접 들은 사람들뿐 아니라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그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진이나 동영상이 차지한 슬라이드들을 그대로 프린트해서 나눠주다 보니 깜빡 잊고 앙코를 넣지 않은 찐빵이 돼버렸습니다.


시각적 정보 전달을 먼저 생각하여 만든 슬라이드는 발표를 직접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시각적 보조자료입니다. 위 슬라이드 사진은 이번 학회에서 발표한, 나와 학회 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가까운 후배의 발표 자료입니다. 다른 사람 것을 사진 찍는 것보다 가까운 후배(해볼 수 있는 ^^)의 자료를 넣는 것이 안전할 거 같아 그노마(?)의 것을 넣었습니다. 

어떤가요? 학회를 가지 못한 사람이 이 자료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또는 학회에 참석했던 사람이 나중에 아주 나중에 자료집을 참고하려고 펼쳤다고 생각해보죠. 이 자료가 어떤 정보를 줄까요? 또는 어떤 기억을 의식의 표면에 부양시켜줄 수 있을까요?

'나 돌아갈래'라고 말한 것과 그냥 차라리 예전처럼 글로 도배된 유인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지금의 세련되고 간결한 그 유인물이 되려 학술대회나 유인물의 기능을 퇴색시킨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과거에 했던 것처럼 텍스트로 도배된 슬라이드를 사용하고 유인물을 배포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원작이 끝나 있어야 예고편이 있는 것이다.

슬라이드를 이용한 프레젠테이션이 영화의 예고편이라면 유인물은 원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이 완료되어 있어야 그중 줄거리와 분위기 재미를 맛보기로 보여줄 수 있는 예고편 제작이 가능하겠지요. 학회에서 하는 발표는 회사에서 하는 신제품 발표회장이 아닙니다. 자신의 경험(임상에서든 연구의 결과에서든)이나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말(프레젠테이션+슬라이드)로도 해야 하고 글(유인물이나 자료)로도 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집단과 조직, 학회의 구성원들은 분명 예전보다 프레젠테이션 기술도 늘고 슬라이드 제작하는 감각과 기술도 늘었습니다.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렇지만 그것은 슬라이드 자체에 국한해서... 프레젠테이션과 학회 활동의 본 의미와 목적은 또 그 효과는 되려 퇴보한 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유인물은 텍스트로 된 도큐멘테이션이야 한다.

현장에서는 세련된 프레젠테이션 기술로 주장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합시다. 학술적 의미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유인물은 글로 써야 합니다. 물론 유인물에도 사진이 들어가면 매우 효과적이죠. 그러나 그 사진과 그림을 설명하는 글이 쓰여 있어야만 그렇습니다. 또 글은 발표자의 생각과 주장이 논리적으로 또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쓰여 있어야 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것도 막노동인데 유인물까지 따로 만들라고요?

우리가 왜 학회에서 발표하고 토론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러한 활동의 목적과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발표자는 물론이고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더 삽질을 해야 합니다. 사실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글로 된 유인물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슬라이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먼저 글로 써보아야 생각도 정리되고 자기 주장의 구조가 논리적인지 큰 오류와 허점은 없는지 점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귀찮아집시다. ^^
('너나 잘해라'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우리'라고 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