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적 운동의 역사적 변화를 살피면 관련 분야의 연구 결과와 지식이 어떻게 우리의 실기(practice)를 바꾸는지 알 수 있다. 치료사로서 우리의 임상 행위와 실기는 새로운 지식이 출현할 때마다 변화하였다. 치료적 운동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초기에 출현하였던 치료적 운동의 형태는 정골요법의 한 형태인 교정운동이나 근재교육법이었다. 이 접근법들은 움직임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와 해부학에 기초한 것들이었다. 1
1900년대초 신경생리학의 연구가 활발해지자 관련 연구 결과를 토대로 운동치료의 초점은 이제 근골격계를 넘어 신경계로 옮겨오게 되었다. 그때 만들어진 접근법들이 2015년도 현재 우리나라의 신경계 물리치료의 주요 거점을 차지하는 접근법들이다. 이른바 브랜드 -주로 창시자의 이름이 붙는다- 접근법들이다: Bobath, PNF, Rood, Brunnstrom 등.
이 접근법들은 동시대의 연구와 문헌에 기초하여 그 지식체계 내에서 통찰력 있게 인간의 움직임을 이해하려 했고 또 움직임을 개선하고 수정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때 진행된 관련 학계의 연구는 주로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연구들이었다. 신경해부생리학의 연구 결과들이 그러했고 행동학에 관한 연구들의 결과들이 그랬다. 이 연구 패러다임은 주로 자극-반응 기전에 의한 연구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연구 결과들에 기반을 둔 접근법들의 주요 작동 방식은 감각 입력을 통한 움직임 촉진이었다.
치료적 운동 연구 패러다임의 변화
기술이 발달하고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1980년대에서는 주로 인간의 움직임을 직접 연구하는 방식으로 연구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다. 또 물리치료학계의 체계가 잡히면서 연구에 중점을 두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치료사들이 직접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고 관련 연구들도 늘기 시작했다. 또 실험의 결과들을 직접 임상 실기에 접목하려는 시도들도 늘어났다.
이때는 주로 귀납적 추론이 주요 추론의 방법으로 사용되던 때였다. 임상 현장에서 얻은 개개의 특수화된 시도들에서 얻은 경험이 귀납적으로 정보 또는 지식으로 만들어지고 그 지식을 다시 치료업무에 적용하는 순환이 반복되었다. 어떤 관심사에 대한 임상 결과가 이론적 설명을 이끄는 시대였다. 일시적 치료 효과를 경험하면 그것을 토대로 임상 지침이 만들어지고 그 지침을 다시 임상에 적용하는 식이었다. 이는 움직임에 대한 지식의 과학적 실체가 부족했던 탓으로 생각된다.
또 과거의 실험 패러다임은 환원주의 접근법에 기초하였다. 환원주의는 전체가 부분의 합이며, 전체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간주한다. 그렇게 나눠진 부분을 다시 합치면 전체가 된다고 생각한다. 부분의 작동원리를 파악하여 그것을 합치면 전체의 작동 원리 및 기전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체처럼 전체를 한꺼번에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원주의적 접근법이 유용하며 어떤 경우에는 유일한 연구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분의 합은 전체라고 할 수 없으며 특히 인체처럼 복잡한 복잡계에서는 환원주의의 기본 지식 체계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가 사는 환경은 매우 복잡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각 환경의 영향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의 움직임이나 행동을 밝히는 연구는 무의미하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전을 밝히기 위해 진행된 세포 수준의 연구결과를 인간 전체의 동작체계나 행동체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EMG, 동작분석, 생역학적 연구, 뇌 가역적 변화 연구들을 통해 인간의 움직임 조절 기전을 탐구하려는 연구 시도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로는 움직임과 관련된 연구들에서 연역적 절차가 가능해졌다. 그래서 이론적 과학적 기초 연구에서 임상 암시를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앉은 자세에서 일어서기 같은 활동은 이제 표준 훈련 지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앉은 자세에서 일어서기 활동의 동작을 분석한 생체역학적 연구들의 노력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운동 수행과 운동 조절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현재의 치료 접근법들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2
성급한 이종결합의 폐해
기존의 지식체계를 뒤흔드는 근거들이 명확해지고 홍수처럼 쏟아지면 현장의 치료사들은 기쁘기보다는 힘들어진다.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누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결합하고 싶지 않겠는가. 자신의 지식체계를 뒤집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지식체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에 기반을 둔 자신의 행위와 업무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사들은 자신이 하던 행위와 업무 형태는 그대로 둔 채 머릿속에 든 지식만을 바꾸려는 시도를 생각하게 된다. 유혹에 빠진다. 자신이 하던 행위를 그대로 둔 채, 그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틀 내지는 사고의 틀만 바꾸려는 유혹.
신체 시스템들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관점과 병변 이후에 손상의 특성에 관한 관점의 차이를 깊게 성찰하지 않고 무작정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다면 몸은 새이지만 머리는 개인 이상한 괴물이 탄생하고 만다. 바로 이종결합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나왔지만, 치료사의 행위는 바뀌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 강직이 장애에 미치는 영향 3에 대한 연구들이 많아지고 또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강직에 대한 임상 치료사들의 치료 행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4
장점만을 추려내어 결합하는 것은 자못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는 합리적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큰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기존의 지식을 받아들여 자신의 행위를 바꾸기 힘든 치료사들은 이제 과거의 몸통 위에 새로운 머리를 얹힌다. 충돌하고 대립하는 것들이 변증법적으로 화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은 역사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철학과 기본개념에서의 차이가 근본적으로 극복되지 않으면 그 위험성은 매우 치명적이다.
신경계 재활분야를 다루는 학문이 있다면 그 학문은 잡탕(!) 학문이다. 여러 분야의 동시대의 연구 결과들을 반영하여 개인의 신체기능/활동/참여 수준의 문제점을 다루고, 통제하고, 개선하고, 때로는 교정하여 삶으로의 복귀를 추구한다. 동시대의 연구 결과는 변한다. 발전한다. 우리의 사고 틀/이론 틀/개념 틀도 변화한다. 의미 있고 좋은 이종결합이 되려면 새롭게 출현한 이론/근거/주장/개념에 근거하여 자신들이 하는 행위를 검증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결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위는 바꾸지 않은 채 머리만 바뀐 척하는 것은 머리는 개이고 몸은 새인 "개새"를 양산하는 길이다. 빨리 가려 하지 말고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가야 한다.
곳곳에 "개새"들이 많이 널려 있다. 최악의 "개새"는 특정 개념이 틀렸음을 또는 제한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연구 결과를 그 특정 개념을 보위하기 위한 최신 정보로 탈바꿈하는 데 쓰는 경우이다. 철학과 개념이 상충하는데도 말이다. 말 그대로 "개새"이다. 나는 개새를 만들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결합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아직 돌연변이임을 서로 인정하고 밝히자는 것이다. 모든 돌연변이가 버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초 이론/철학이 다른 개념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검증을 통과한 다음에야 돌연변이가 아닌 "정상"이 된다.
[Footnotes/References]
- 1. 여기서는 실기를 치료와 동의로 생각해도 좋다. 실기라는 단어는 practice의 우리말 대응어인데, 임상에서 치료사가 하는 모든 행위 또는 과정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 2. Carr JH, Shepherd RB. Movement Science. Aspen Pub; 2000. [본문으로]
- 3. Ada L, O'dwyer N, O'neill E. Relation between spasticity, weakness and contracture of the elbow flexors and upper limb activity after stroke: an observational study. Disabil Rehabil. 2006 July;28:891–897. [본문으로]
- 4. Ada L, Vattanasilp W, O'Dwyer NJ, Crosbie J. Does spasticity contribute to walking dysfunction after stroke? J Neurol Neurosurg Psychiatr. 1998 May;64:628–63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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