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a fysiotherapist

PNFer의 자살골 - 우린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iTherapist 2015. 11. 18. 10:31


우리 팀원들은 PNF 교육을 통해 수가청구가 가능한, 이른바 "쯩"을 딴 사람을 PNFer라고 부른다. PNF에 접미사 -er을 붙인 말이다. PNF+er. 그들이 사용하는 다른 단어도 옮겨보자면, NDTer가 있고 Bobather도 있다.[각주:1] 그 분류에 의하자면 나는 PNFer이다. 세부 분류하자면 Extreme PNFer 정도이지 않을까. ^^ Extreme PNFer로써 공개적으로 "자살골" 하나 넣으려고 한다. 읽는 분들의 사전 심리 상태에 따라 "자살골"이 아니라 "또라이 짓"이 될수도 있겠다.


(진지 타는 글이니 궁서체로 간다. ㅋㅋㅋ)

(가독성이 너무 지렁이라는 민원이 들어와서 다시 산세리프체로 갑니다. ㅠㅠ) 



우린 學會인가, 協會인가?


우선 학회와 협회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출처: 네이버 국어 사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사회복지학 사전



  • • 학회: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더욱 발전하기 위하여 공부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

  • • 협회: 특정의 제한된 기능 수행을 목적으로 의식적으로 형성된 집단.


학회와 협회를 지칭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영어 단어도 살펴보자. 여러 단어로 전환할 수 있고 각 단체마다 제각각이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학회를 Academy로 협회를 Association으로 바꾸는 식일 것이다.


내가 속해 활동하는 학회(? 아니면 협회?)의 한국어 명칭은 대한 고유수용성 신경근 촉진법 학회(學會)이다. 이 학회의 공식 영어 명칭은 KPNFA (Korea Proprioceptive Neuromuscular Facilitation Association)이다. Association, 즉 協會이다. 이 영어 명칭은 세계 PNF 강사들의 모임인 IPNFA (International PNF Association)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IPNFA의 명칭은 타당하다. 그들은 각 나라의 강사들이 모여서 조직한 기능적 단체, 협회이다. 그 기능상 그들은 학회가 아니다. IPNFA의 집행부 내에는 Research Committee가 있고 그 위원회에서 연구와 학술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협회가 있고 그 산하에 학술위원회를 두는 셈이다. 사단법인 대한 물리치료사 협회 (Korean Physical Therapist Association)도 마찬가지이다. 협회 산하에 수십 개의 학회로 구성된 물리치료과학회를 두고 있다. 이렇게 협회와 학회를 구분하는 것은 각 조직의 정체성과 특수성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 고유수용성 신경근 촉진법 학회(KPNFA)는 한국어 명칭은 學會로, 영어 명칭은 Association (協會)로 표기한다. 혼란스럽다. 우린 學會인가, 協會인가? 표기하는 용어의 혼란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오류를 이야기하고 합의하여 바꾸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체성의 혼란은 큰 문제이다. 명칭의 이중적 표기 못지않게 최근 이 학회가 가고 있는 방향과 정체성도 그 뚜렷한 선을 확인하기가 힘들어졌다. 용어의 혼란도 문제지만 또 그 용어의 문제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원인균은 거기에 있지 않다. 



정체성의 혼란


KPNFA의 호적을 살펴보면 그 정체성은 분명 학회였다. 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또 학회를 결성한다고 해서 무언가 이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사비를 내어 학회를 결정하고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온 것은 그분들의 노력 덕에 가능했다. IPNFA처럼 강사들의 모임도 아니었고 강사도 없었다. 


임상연구회 형태로 어렵사리 학회를 이끌던 초기 학회 발기인과 임상 선생님들은 급기야 학회지까지 발간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주 놀랍고 굉장한 일이었다. PNF가 처음 생긴 미국에서도 IPNFA가 결성된 유럽에서도 하지 못한 일을 한 것이다. 최근에는 PNF에 관한 논문이 아니면 논문의 게재를 고민할 정도로 학회지의 정체성 위기도 있었지만 발간 그 자체는 PNF 역사에 물리치료학 역사에 기록될 일이었다. 


1994년에 결성된 KPNFA는 2000년도 초반, 학회 원로들의 노력으로 이른 바 수가 청구가 가능한 "쯩(교육 이수증)"으로 인정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베이비붐이 아니라 "쯩붐"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각 지회가 결성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실 그 이전에는 학회 발기인들이 명목상 지회를 결성하고 지회장을 겸하고 있었다. 5~6개의 지회가 그저 이름만 내걸고 실질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실정이었다. "쯩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이제 학회는 14개 시도회가 되었고 정회원도 5,000명으로 물리치료계통의 가장 큰 학회가 되었다.


정체성의 혼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유령 페이퍼 회사처럼 서류로만 등록되어 있던 지회들의 활동은 그런 적이 있었느냐를 온몸으로 반문하듯이 역동적 활동으로 바뀌었다. 1년에 한 두번 연수 교육을 열까 말까 했던 교육은 1년 내내 개최되었다.[각주:2] 전쟁 이후 격동기 한국 사회와 산업처럼 학회는 격동기에 휩싸였고 급기야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



'쯩' 장사꾼의 고뇌


학회의 최고 의결기구는 이사회의이다. KPNFA의 이사는 14개 시도회장과 정회원들의 총회에서 선출된 학회장이 임명한 집행부 이사들로 구성된다. 25~30명의 이사가 모여 학회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하고 이를 집행부가 집행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논의에서 학술적인 논의는 사라졌다. 학회가 협회로 변한 것이다. 기능적 이익 단체가 되었다. 학술적인 논의와 토론, 활동은 사라졌다. 학술지는 여전히 발간되고 있고 학술대회도 매년 개최되고 있지만, 그 어떤 활동에서도 학술적 논의와 토론을 기대하지 못한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최근 3~4년 동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한 사람의 일탈과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가 저질렀던 더 큰 무리수에 학회 전체가 이리저리 휘청였다. 


정체성 혼란의 이유는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이 학회에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권, 이익, 돈이었다. 가치 중립적이어야 할 단체가 가치 지향적으로 바뀐 것이다. 학회는 협회가 되었고 이사회의는 각자 또는 자기가 속한 더 작은 무리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안에는 대변이 가득 차게 되었다. 똥을 둘러싼 우리 만의 혹은 그들 만의 작은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런 혼란이 학회의 존폐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쯩"이 있는 한 이 학회의 기득권은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기득권을 부당한 것이거나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판다. 공급자는 교육/연수/지식/정보를 제공하고 수요자는 그것을 돈으로 구매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원리는 선이자 원동력이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들의 정체성의 혼란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學會인지, 協會인지를 규정하는 것, 그것이 양적 팽창이 최고점에 오른 이 시기에 학회가 고민하고 처리해야 할 최 급선무의 문제이다. 


이사회의 근처도 가지 못하던 시절, 이사회의 석상에서 나왔다는 에피소드를 전해들었다. 어떤 현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의견이 충돌하여 격론이 벌어졌고 그 끝에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만히 쯩 장사나 하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웃고 넘어갔지만 참 씁쓸한 장면이다. 지금은 웃지 못하고 아프기만 하다.



나는 분리주의자


나는 분리주의자를 자처하고 싶다. 


학회 정관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 단체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學會와 協會를 구분하자고 감히 권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協會의 일이지 學會의 일이 아니다. 각자가 정당하게 손에 쥔 것을 놓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協會로 바꾸어라. 그것이 더 쿨한 선택이다. 


'學會'라는 명칭을 놓고 싶지 않은가? 이 단체 탄생의 정체성은 학회이다. 그 뿌리를 자르고 싶지 않은가? 뭔가 고상해 보이고 더 격있어 보이는 유교적 색깔 안경을 버리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리하라. 協會의 정체성과 색깔 그에 걸맞는 가치 판단, 그에 기반한 행위를 그대로 둔 채, 學會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보신탕집 주인이 반려견을 기르는 일처럼 어색하다


교육 연수가 학회의 모든 것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아니었다. 안다. 교육 연수가 아주 중요해졌다는 것을. 교육 연수는 학회가 해야할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이다. (사실 그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주와 객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객이 주를 쫓아낸지 오래다. 바로 잡아야할 때이다. 교육 연수와 학회 본연의 업무를 구분하자. 교육 연수는 학회의 대변 단체, 즉 중앙회가 담당하는 업무는 아니다. 각 시도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니 각 시도회의 연합을 協會로 하고, 學會를 독립적인 단체로 분리하라. 학회는 학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원래의 단체의 정체성대로 토론하고 연구의 장으로 만들자. 


* 사실 KPNFA의 정관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업에는 교육에 관한 구체적 언급조차도 없다. 아래 학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정관을 보자(Accessed on 2015.11.18.).  

제 6 조 (사업) 본 학회는 제3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사업을 행한다.
   1. 고유수용성신경근촉진법의 연구 발전에 관한 사항.
   2. 학술지 발간에 관한 사항.
   3. 학술대회 및 연구 발표회 개최에 관한 사항.
   4. 국제 교류에 관한 사항.
   5. 기타 본 학회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자.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초심을 확인해보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면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 단체의 가치관이 변했고 사회와 환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체는 생각이 없다. 단체는 사고하는 주체도 아니고 정체성과 주체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사고하는 것은, 정체성과 주체성을 갖는 것은 각 개인, 사람이다. 그 단체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그 단체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누구인지, 왜 모였는지...



[각주]

  1. 1. 사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풍자의 의미가 있다. PNF를 들은 사람은 PNF만 보바스를 들은 사람은 보바스 기법만 사용하는 것을 풍자해서 부르는 듯 하다. [본문으로]
  2. 2. Basic 코스(2주 소요), Part AB 코스(6주 소요), Advance 코스(5주 소요), Level 1&2 코스(10일 소요) 한 번 개최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어떤 지회는 Basic을 4번, Part를 8번, Advance를 5번, Level을 2번 개최한다고 들었다. 한 달에 1개 코스를 개최한다고 하면 거의 1년 동안 쉬지 않고 교육 코스를 여는 셈이다. ㅎㄷㄷㄷ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