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a fysiotherapist

초짜의 운과 낮게 달린 열매

iTherapist 2020. 6. 29. 15:04

 



당구를 전혀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당구 한 게임 치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또 난생처음 치는데도 이기는 이변을 보이기도 한다. 볼링장에 처음 간 사람이 웬만큼 다녔던 사람보다 점수가 높은 경우를 우린 자주 본다. 아예 하지 못하던 사람이 무언가를 할 줄 알게 되는 단계는 비교적, 상대적으로 쉽다. 그냥 당구장에 가서 큐만 잡으면 끝나는 일이다. 거기에 무슨 거창한 테크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고수의 훈수는 초짜에게 필요한 단계가 아니다. 해줘도 모르고, 그럴 단계도 아니고, 심지어 다시는 당구장에 가지 않겠다는 부적 피드백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움직임 같은 어떤 기예의 수준 차이는 등간척도나 간격척도가 아니다. 1단계와 2단계의 차이가 8단계와 9단계의 차이와 같지 않다. 태권도 1단에서 2단으로 올라가는 것과, 8단에서 9단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전혀 같지 않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간혹 생각하지 못한다. 환자나 고객들이 못하던 움직임을 하게 되거나, 못하던 기능적 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 너무 기쁜 나머지, 그나마 머릿속에서 가끔 나타나 나에게 지적질을 하던 회의론자를 눌러버린다. 회의론자가 사라진, 관객 없는 무대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역시 내 치료가 옳았어. 내 추론이 맞았어. 역시 이 테크닉이 최고네. 역시 이 운동이었어. 내가 문제 파악을 잘했네. 어! 진짜 이렇게 해봤더니 딱 떨어지네? 역시 그 선생님 말이 맞았어. 내가 문제와 핵심을 보는 눈이 있네. 우리 센터의 운동프로그램이 최고네.”

낮게 달린 열매는 따기 쉽다. 어떤 도구를 써도, 심지어 도구 없이도, 지도하거나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도, 처음 따보는 사람도, 남녀노소 누구든지. 힘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과일나무 근처까지만 가면 누구나 취할 수 있다. 어쩔 땐 까치발을 들 필요도 없다. 그저 손만 뻗으면 된다.

기능적 활동 수준이 좋지 않은, 움직임 수준이 떨어지는 고객에게 어떤 운동을 처음 시켰는데, 순식간에 못하던 활동을 하게된 경우가 있었는가? 그를 통해 고객이 못하던 활동을 하게 된 것은 그 새로운 치료/운동 방법이 효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낮게 달려 있어서 따기 쉬운 열매가 있는 나무로 고객을 가이드해서 그런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전에 고객은 한번도 열매가 낮게 달린 과수원에 간 적이 없었던거다. 다른 병원이나 센터를 오랫동안 다니다 효과가 없어서 나에게 온 뒤에 한 두번 치료 치료 후에, 한번 운동하고 확 좋아진 경험이 있는가? 그건 다른 곳에서는, 다른 치료사나 트레이너가 낮게 달린 열매를 딸 수 있게 환경을 제시하지 못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다른 곳에서는 낮게 달린 열매를 따지 말고, 사다리나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어야 딸 수 있는 더 높은 곳의 열매를 제시했을 것이다. 높은 곳에 달린 열매만 바라보며, 장비와 방법을 익히는데 시간만 허비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못했던 움직임을 하고, 증상이 경감되고, 못했던 활동을 하게 된 것은, 같이 기뻐할 일이지만, 또 같이 기뻐해 주고 함께 동기부여 받아야 할 일이지만, 또 가이드한 사람으로서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그것을 효과의 근거로 삼지는 말자. 그건 초짜의 운이었거나, 낮게 달려 있던 열매였을 수도 있다.

당구를 한 번도 쳐보지 않은 사람이 당구를 시작하고 게임에 참가하기는 쉽다. 움직임도 그렇다. 그저 움직이지 않아서, 움직이는 방법을 몰라서, 아니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몰랐던 사람이 어떤 움직이나 동작을 하기는 쉽다. 그저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특별한 테크닉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거기에 무슨 거창한 이론이나 논문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거기에, 수십킬로 무게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나, 정확한 퍼포먼스를 보여야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생역학적 계산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의 테크닉 때문에 잘하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그 활동을 하기만 하면 된다.

나의 통밥(좀 거창하게 추론이라고 하자)이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그 상황에서 우리는 잠시 눈이 먼다. 더군다나 환자나 고객이 뛸 듯이 기뻐하면 나도 모르게, 소심하고 매사에 자신 없으라 하는 그 회의론자를 뒤로 감춘다.

초짜의 운이나 낮게 달린 열매를 생각하지 말거나 그것을 목표로 또는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분들은 낮게 달린 열매부터 따도록 해야 하고 또 그렇게 유도해야 한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뛸 수는 없는 일이며, 앉지도 못하는 사람이 걸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착각하지 말자는 말이다. 또 그것을 나의/우리의 테크닉과 운동 방법의 효과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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