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역의 한국인 노숙자)
사진 속 노숙자는 나다. 10년 전 사진. 2007 네덜란드 호엔스브루크에서 열린 AQC (Assistant Qualification Course)에 참가했던 때였다. 함께 간 사람들이 하도 어이없어서, 그리고 나중에 골려줄 생각으로 옆에 돈까지 놔두고 찍은 사진이다. 나중에 내게 보내주었다. 오늘 글에 쓸 사진을 고르는데 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2007년 저 무렵 난 지금의 씨티재활센터로 직장을 옮겼다. 재활센터 구성과 시스템 구축을 책임지는 책임자로 말이다. 또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출국하는 주가 논문 심사본 제출 마감일이어서 가는 날까지 날을 새던 때이다. 알량한 운동신경으로 축구 좀 해보겠다고 뛰었다가 발목이 부러져 석고붕대를 하고 센터를 절뚝거리고 돌아다니며 근무하던 때였다. 출국하기 전날 붕대를 풀었다.
코스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면서 긴장이 풀어졌는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지쳐 쓰러진 것이다. 브뤼셀에서 기차를 갈아타야하는데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드러눕고 말았다. 보잘것없는 사진이지만 내게는 저 때의 심정과 몸의 느낌이 그대로 떠오를 만큼 의미 있는 사진이다
나는 오늘 IPNFA (International PNF Association)에 공식 메일을 보냈다. 보조강사 수련과정Assistantship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주변에 국제강사를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보조강사 활동을 중단한 지는 벌써 5~6년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IPNFA에 공식 통보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그 메일을 보냈다.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그 뒤처리를 한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폼 잡고 구라치고 있던 그 시절, 비수기 때 재미로 참석해본 국제코스에서 브리타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저 사람처럼 되어야겠다며 물리치료계로 다시 돌아왔다. 2003년의 일이다. 지인들과 Sports PNF Research Institute를 개설하고 PNF에 미쳐 살았다. 거울 보고 혼자 연습까지 하던 시간이었다. 정말 미쳐 살았다. 내 30대의 키워드 중 하나가 PNF이다.
2003년 정식으로 PNF Level 1,2코스를 처음 이수하고, 2005년 여름 Level V 코스에서 AQC 코스에 갈 수 있는 추천서를 받았다. 시작한 지 2년 만에 얼떨결에 추천서를 받은 것이다. 그때였다. ‘국제강사? 고걸 할 수 있는 길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생각했던 때가... 그런데 국제강사가 되려고 강하게 마음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자신감이 있었고 열정과 정력이 있던 때였다. 쏟아부을 거리를 찾지 못하던 때였다. “도대체 몇 시간이나 자세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던 때였다. 그냥 했던 것 같다. 그냥.
위 사진의 모습처럼, 쓰러질 정도로 집중해서 AQC 코스를 합격하고 나서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국제강사가 왜 되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Assistantship 과정을 누구보다도 빨리 시작하고 여러 코스에 참가하면서도 강한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동기 에너지가 거기까지였나보다.
또 나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도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한쪽으로 흘러갔다. 어느 조직이든 그렇듯이, 마음을 숨겨야만 하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다. 소신과 마음을 숨겨야만 하는 상황에 몇 번 노출되자,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누구도 나에게 선택하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요구보다 상황과 맥락의 암묵적 요구는 더 강력하다.
5~6년 전 주변 분들과 브리타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들은 모두 마음 아파했다. 다들 ‘아깝다'고 했고 ‘아프다'고 했다. 난 그들과 상의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결정했고 그들에게 말했다. 가장 가슴 아파했던 분은 브리타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가장 미안해 했던 분도 그였다.
나는 국제강사를 포기하는 쪽을 선택했고 사람을 얻었다. 물론 그 사람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아랑곳 하지 않고 나를 받아주었을테고 나와 함께 일을 했겠지만. 나는 그 알량한 나의 소신을 지키면서 내가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되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어차피 나의 PNF 국제 강사 수련 과정은 5년 전에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효력도 다해간다. 공식적으로도 털어낼 때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PNF라는 키워드를 놓는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PNF라는 개념과 지식/정보를 더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다. 그것 또한 나의 소신이다. 공식적인 포기 메일을 보내려고 하니, 여러 기억과 마음이 일렁여서 지껄여 본다. 국제보조 강사로 활동하지도 않으면서 5년~6년이 지나도록 깨끗하게 털어내지 못한 심정은 -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 IPNFA 멤버라는 타이틀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중요한 키워드였으므로...
지지하고 응원해준 나의 AQC 동기들, 알량한 소신을 설득하려고 마음 써준 국제강사 브리타, 고다나, 카샤, 승섭, 규행, 경일 그리고 지난 달까지 나를 설득하려고 애써준 “쎈진”에게, 부족한 인간에게 기꺼이 추천서를 써준 여러 국제강사님(프리츠, 매트, 마셀, 카스턴, 도미니크)에게 고마움과 죄송함을 섞어 보낸다. 소신을 지키도록 지지해준 '지존'께 감사드립니다.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해 후배님들에게 가장 죄송합니다.
나의 30대를 지배했던 타이틀, PNF 국제보조강사 자리를 ‘공식적으로' 내려 놓으며...
(2007년 AQC 동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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