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 Research

[EBP에 관한 단상] EBP는 임상추론 과정에서만 의미가 있다.

iTherapist 2016. 3. 11. 10:38

* 이글은 이전에 올린 EBP, 임상추론, 의사결정과정"과 유사한 내용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



지난주, 개모임(계 아님) 술자리에서 학교에 근무 중인 친구와 EBP (Evidence-based practice)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학생들에게 EBP를 가르치려고 생각하니 무언가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왜 EBP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해줄 수 있지만, 그 실제와 절차를 설명하고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라고는 교과서 뿐이다. 교과서에서는 주로 특정 치료법의 효과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 EBP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내용들은 대부분 이렇다. ‘이 논문에서는 효과가 이렇다고 나온다. 저 논문에서는 저렇다고 나온다. 그래서 아직은 그 치료의 효과가 000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없다.’라는 글들뿐이다. 그래서 친구는 “그래서 어쩐다고?”라는 질문이 나올 경우를 생각하면 할 말도 없어지고 본인도 답답해진다는 것이 친구의 고민이었다.
나는 친구의 고충에 충분히 공감한다.
아직 우리 임상에는 EBP의 실체가 없다. 그 실행적 모듈, 즉 어떤 절차로 시행하고 어떻게 임상 업무에 녹아드는지를 볼 길이 없다는 거다. 모두 EBP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지만(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실행적 모듈과 그 결과 또는 실체를 보여달라면 움츠려들 것이다.
EBP는 논문의 종류와 각 논문의 특성, 연구설계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제한점, 각 논문 종류의 근거 강도(level of evidence)를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정보를 안다고 해서 EBP를 안다고 또는 EBP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정보와 지식은 EBP의 선행 조건들이다. 즉 EBP를 하려면 그런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학교 교육과 학회 강좌들이 EBP를 다루지만 -사실 그런 교육도 별로 없지만- , 모두 이런 류의 정보를 강의하는 것에 그친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거다.)
작년에 우리(씨티재활센터 지렁이들)는 2015년 프로젝트로 “EBP 뿌리 내리기”를 시도했다. 말뿐인 EBP가 아닌, 내 practice를 이끌고 바꾸어줄 또는 내 고민을 해결해줄 혹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환자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과정에서 EBP를 실행하고 시스템화하려는 시도였다. 결과는 약간의 의미 있는 성공과 숙제 가득한 실패의 혼합이었다. 성공은 일단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몇 가지 걸림돌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걸림돌은 가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EBP는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최선의 근거를 통해 정보를 얻어서 치료사와 환자에게 의미 있는 결정을 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논문에 관한 정보와 지식, 논문 보는 법, 논문 찾는 법을 알리고 익혀봤자, 자신이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 없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결하려고 하는 임상 문제를 인식하지 않으면, 현장에, 즉 Practice에 녹아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라고 생각한다. 숙제 가득한 실패. ^^ (앞으로 할 일이니까.)



EBP는 임상추론과 의사결정과정에서만 의미가 있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시도할 때에만 EBP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그렇게 고민하고 어떤 임상적 결정을 해야 할 때 그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검진 과정의 정보와 중재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때도, 더 앞서서는, 검진과정에서 어떤 평가도구를 써야 타당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할 때도, 환자에게 예후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까에 관한 고민 시에도 EBP가 필요한 거다. 그런데 그런 고민도 그것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논문에 관한 교육을 한다 해도 필요가 없다.
전에 블로그에 “EBP, 임상추론, 의사결정과정"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http://itherapist.tistory.com/178). 다음은 그때 썼던 글의 결론이다. 다시 한 번 결론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단언하건대 아무리 근거의 질이 높은 연구 논문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치료하라고 말을 해주는 논문은 없다. 연구의 목적이 어떻게 치료하라는 지침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근거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적어도 내 생각으로는-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은 근거에서 알게 된 것을 어떻게 적절하게 치료사와 환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통합할 수 있는가이다. 결국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는 다시 치료사인 우리들의 몫으로 남는다."

임상추론모형(Barrows & Tamblyn, 1980). 임상추론이 먼저이다. 임상추론과정에서 EBP를 할 때에만 그명분과 목적이 살아난다.